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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성호의 옛집 읽기><23>‘독립운동의 명가’ 목재 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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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2-03-16 09:45 조회1,80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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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성호의 옛집 읽기><23>‘독립운동의 명가’ 목재 고택

안동시 제공

목재(穆齋) 고택은 도산서원에서 낙동강을 따라 상류로 올라가다 퇴계의 묘를 지나 육사 문학관 근처에 있다. 조선 후기의 문신인 목재 이만유(李晩由·1822∼1904)의 고택이다. 대문채가 사라졌다고는 하지만 대문채가 따로 필요 없는 ‘ㅁ’자 집이다. 중문이 따로 없는 것도 이 집이 본래 대문채를 두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이유다. 사랑채와 안채가 ‘ㄱ’자와 ‘ㄴ’자로 결합해 있어 ‘ㅁ’자를 이룬다. 드나드는 문은 사랑채와 안채가 결구하는 지점 두 곳에 있다. 대문채가 없어도 아주 효과적으로 사랑채 마당과 안마당이 독립적으로 구성된다.

사랑채는 전면의 다섯 칸 가운데 맨 오른쪽의 광 한 칸을 제외한 나머지 칸에 반 칸의 툇마루를 설치한 후에 맨 왼쪽의 방 한 칸을 정자 형태로 꾸며 쪽마루를 달고 방 앞의 툇마루에는 바깥으로 약간 튀어나오게 만든 계자(鷄子)난간을 둘렀다. 조선집에서 이 계자난간이 주는 느낌은 참 독특하다. 아무것도 아닌 쪽마루라도, 별일 없는 툇마루라도 이 계자난간이 둘러지면 엄청난 호사와 여유가 저절로 생기니 말이다. 이 집의 주인도 그랬는지 이 쪽마루에 아주 굵은 해서체로 ‘이헌(怡軒)’이라는 편액까지 달아 놓았다. 기쁘게 맞이한다는 뜻이다.

나는 육사 문학축제에 갔다가 우연히 이 집에 숙소를 배정 받아 하룻밤 지낸 적이 있다. 한여름인데도 덥지 않게 이 정자 속의 방 한 칸 같은 집에서 잘 자고 일어난 기억이 있다. 화려하지 않고 위엄을 내뿜지도 않지만 실속 있고, 정감 깊은 집이었다.

어딘지 모르게 퇴계의 냄새가 난다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목재 이만유는 퇴계의 11세 손이다. 그리고 그의 딸이 바로 “공자 맹자는 시렁 위에 얹어 두고 나라를 되찾은 뒤에 읽어도 늦지 않다”며 독립운동을 위해 서간도로 떠난 임청각의 주인 석주 이상룡의 며느리다. 그리고 그렇게 떠난 서간도에서 맞이한 석주의 손주며느리가 ‘아직도 내 귀엔 서간도 바람소리가’의 저자 허은이다.

허은은 허형의 손녀로, 허형은 독립의병을 일으켜 을지로까지 진군하다 실패한 후 만주로 망명한 왕산 허위의 사촌형이다. 그 범산 허형이 바로 청포도의 시인 이육사의 외할아버지이다. 이렇게 안동의 명문가들은 서로 맺어져 있고, 다투어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지금 목재 고택을 지키고 있는 사람도 육사의 유일한 혈육인 이옥비 여사다.

함성호 시인·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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