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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시인 이육사선생 유일한 혈육...'이육사문학관'서 일어 통역 안내 - 경북매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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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하 작성일09-03-01 09:43 조회2,71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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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정착후 첫 3ㆍ1절 맞은 이옥비 여사2009-02-26
“과거는 과거일 뿐 앞으로가 중요하죠”

민족시인 이육사선생 유일한 혈육…‘이육사문학관’서 일어 통역·안내

 

안동 이육사문학관에서 일본어통역과 안내를 맡고 있는 이옥비 여사.일제강점기 민족의 저항정신을 드높인 시인 이육사(1904∼1944) 선생의 유일한 혈육인 딸 이옥비(68) 여사에게 올해 3·1절 감회는 각별하다.
대구에서 학창시절을 보내고 서울에서 살던 그녀가 아버지의 고향인 안동에 정착한 뒤 처음으로 맞는 3·1절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홀로 안동에 내려온 이 여사는 문중의 치암고택에 거처를 마련하고, 도산면 원천리의 이육사문학관에서 일하고 있다.
이곳에서 그녀는 일어통역원 및 문학관안내원으로서 아버지가 그토록 저항했던 ‘원수의 나라’ 일본인 관광객을 맞이한다.
일제의 횡포로 아버지를 잃은 그녀와 일본인 사이에 흐르는 긴장은 사실 필연적이다.
문학관과 자동차로 5분여 거리인 도산서원에는 많은 일본인 관광객이 몰려들지만, 육사선생과 그 딸의 존재가 거북한 탓인지 문학관엔 발길이 영 뜸했다.
그러나 사실 그녀는 99년 남편과 사별 후 니가타의 한국 총영사관 등 일본에서 5년 이상 머물면서 일찌감치 관용의 마음을 품었다.
“일본인요? 전에는 그들에 대한 분노나 회한이 많았죠. 그러나 이젠 아닙니다. 과거는 과거대로 남겨두되 중요한 건 앞으로의 관계라고 생각하거든요.”
문학관을 찾은 일본인 중에는 이 여사의 이런 마음을 엿보고 ‘쓰미마셍(죄송합니다)’이라고 고개 숙이는 이도 적지 않다.
이 여사는 그들을 따뜻하게 안내하고 배웅하면서 역사의 상처와 가정사의 아픔을 스스로 치유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육사의 딸이라는 이유로 평생 ‘명예’와 ‘멍에’를 동시에 지고 살아와야 했다.
학창 시절 아버지의 시를 외워보라던 국어 선생님, 결혼 전까지도 매를 들어 엄하게 가르친 어머니, 주위의 기대와 시선 등 짐은 늘 무거웠다. 이처럼 온전히 육사의 딸로 살아올 수밖에 없었던 그녀에게 3·1절의 소회는 항상 가슴 벅차기만 하다.
그녀의 휴대전화 뒷번호는 ‘2640’이다. 아버지를 기억하며 아버지의 고향에서 시작한 새 삶은 그녀에게 “마침내 저버리지 못할 약속”(육사 시 ‘꽃’ 중)이다.
/이임태기자 lee77@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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