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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여중 3학년6반16번 윤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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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윤정현 작성일11-05-28 22:01 조회16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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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이육사선생님!

 

제가 처음 선생님을 알게 된 계기는 중3교과서에 나오는 선생님에 대한 '지사의 길 시인의 길' 이라는 전기문을 통해 알게 되었어요.

처음 선생님 이름을 듣고 이육사라는 이름을 듣고 참 신기한 이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육사라는 이름이 이육사(李六四)가 아닐까라고 생각하고 난 뒤 이육사선생님의 이름이 죄수번호를 따서 이육사라는 이름으로 만든 이야기를 듣고 참 슬펐습니다.

독립운동을 위해 여러 개의 이름을 가지고 사시던 선생님의 모습과 일제의 압박 속에서도 열심히 조국을 위해 독립운동을 하신 이육사 선생님을 지금이라도 알수 있게 되어서 참 기쁩니다.

 

 이육사선생님은 경상북도 안동에서 퇴계 이황의 14대손으로, 6형제 가운데의 둘째로 태어나셨습니다. 그의 집안은 독립운동가 집안으로서 일제의 눈총을 받으며 살고 있었고 일제는 그의 가족들을 '장진홍 의사 의거'의 범인으로 만들기 위해 온갖 고문을 내렸고 하지만, 육사의 형제들은 서로 나를 고문하라고 일제에게 대들며 서로의 돈독한 우정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어렸을 적 할아버지에게 한학을 배우고 12살 때 보문의숙, 백학서원을 거쳐 일본으로 가셨고 일본에 귀국한 후에는 항일단체인 정의부, 군정서 의열단에 가입하셨습니다. 조양회관에서 벌이는 문화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고 중국을 많이 갔다 오시면서 여기저기의 문화 활동으로 만족하지 않고 직접 항일독립운동에 관여하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러다 1935년 신조선사와 인연을 맺고 신조선의 편집에 관여하다 그곳에 시 7편을 발표하시며 본격적인 시인 활동을 하셨습니다.

이육사 선생님께서는 군사적 능력을 가춘 독립 운동가를 양성하는 조선 군사 간부 학교에서 최우수 성적을 유지했고, 권총 사격에 대단한 실력을 나타냈으며, 꽉 짜여진 교육 과정을 다 마치셨습니다.

그리고 이육사 선생님은 의열단에서 어떤 활동을 하셨는지는 나와 있지가 않습니다.

 의열단 자체가 워낙 경계가 심하고 비밀스런 단체라서 아무것도 나와 있지 않고 이육사선생님은 1943년 한국에 무기밀수를 계획하시다 일본에게 잡혀 감옥에 계셨는데 광복1년을 앞두고 돌아가셨습니다.

 

 만약 제가 그 시대에 살았더라면 일제가 무섭고 두려워서 일제에게 잘 보여서 편하게 살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 당시 선생님을 일제가 못살게 굴고 조그마한 트집(이육사선생님이 시를 발표하면 그 내용을 가지고 취조를 했다.)을 잡을 것들이 생기면 바로 이육사선생님을 잡아 갔다고 들었는데 계속해서 일제에게 압박을 받고 있으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독립운동을 하신 선생님이 존경스럽고 참 멋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또 선생님이 머나만 타국 감옥에서 쓸쓸하게 광복 1년을 앞두고 돌아가신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정말 가슴이 아팠습니다.

누구보다 광복을 바라고 기다리셨던 이육사 선생님께서 광복을 못보고 돌아가 신게 참 안타깝고 슬픈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이육사 선생님이 있어 지금의 우리 대한민국이 있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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